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왼쪽)과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왼쪽)과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
[경제플러스=박소연 기자] “평온한 바다는 결코 유능한 뱃사람을 만들 수 없다”는 영국 속담이 있다. 험난한 바다는 시련과 역경을 주지만, 뱃사공은 이를 극복하면서 성난 파도에도 흔들리지 않는 노련함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지난 2007년 이후 국내 해운업계는 금융위기로 불거진 글로벌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았다. 직전까지 글로벌 시장을 호령하며 승승장구 해왔던 해운업계는 물동량 급감이라는 성난 파도에 휩쓸리며 시련을 겪어왔으며, 최근 글로벌 경기 회복세에도 그 파고는 여전한 상태다.

특히, 올해는 그간 문제시돼온 물동량 부진에 따른 선박 과잉 문제와 고유가 파동에, 일본발 방사능 공포까지 더해지며 노도(怒濤)는 여전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산적한 악재로 바다는 해운업에게 더 이상 생존터가 아닌 불모지로 느껴질 정도”라는 업계관계자의 푸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이런 척박한 해운업계에서 느리지만 묵묵히 노도를 해쳐나가는 두 여제(女帝)가 주목받고 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녀들은 위기 속에서도 시련을 ‘키’ 삼아 희망의 발걸음을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다.

이들의 인연은 최 회장이 한진해운 부회장직을 맡아 경영에 참여했던 2007년 아시아~동지 중해ㆍ흑해 노선 공동 운항 서비스와 함께 시작됐다.

그녀들은 2009년 아시아~미주 노선과 올해 남북노선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파트너십을 빛내며 한국 해운업체 위상을 드높인데 이어, 지난해 9월 아시아~남미 서안 노선 역시 공동 운항하기로 결정했다.

여성 CEO들만의 교감이 통했기 때문일까. 미개척지로 불리던 남미노선을 오랜 경쟁 업체가 함께 개척해나간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며 업계에서는 입을 모았다.

불황속에서 손을 맞잡은 이들의 행보는 올해 더욱 주목되고 있다.

올해는 해운업이 바닥을 칠 것이라는 전망이 점차 고개를 들고 있어, 이들의 위기극복을 위한 노력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최근 이들의 대내외 활동보폭이 넓어지면서 윈윈전략에 이은 진검승부도 기대되는 상황이다.

최 회장은 지난달 7일부터 2주간 유럽·미국 출장을 떠났다. 지구 한 바퀴를 도는 여정으로, 해운업 대형 선사를 방문하고 현지 영업망 점검을 위해서다.

독일 함부르크에 위치한 유럽지역본부를 거쳐 지난해 개장한 스페인 알헤시라스 전용터미널에서 미국 롱비치 전용터미널 현장 및 뉴욕의 미주지역본부에 이르기까지, 한국-독일-스페인-미국-한국으로 이어지는 최 회장의 비행시간은 총 44시간, 이동거리는 대략 2만 마일에 달한다.

최 회장은 경영정상화를 위한 이런 적극적인 경영행보와 더불어 전문성 강화를 위한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최근 대한항공 등 한진그룹 계열사 주식을 대량 매각한 최 회장은 향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계열분리를 위한 ‘조용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계열 분리를 통해 그룹차원의 문제를 벗어나 해운업에만 전념하겠다는 의지 아니겠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현정은 회장의 행보도 가속도가 붙고 있다.

현 회장은 지난달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을 배출한 브라질로부터 명예영사에 임명되며 한국과 브라질의 가교역할을 하는데 직접 나섰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앞두고 대규모 인프라 개척이 진행 중인 브라질 시장은 세계 경제성장의 새로운 동력으로 떠오르면서 다방면에서 국내 기업들의 진출이 기대되고 있는 상황.

현 회장의 주력계열사인 현대상선은 올 초 남북항로관리팀을 신설해 브라질을 중심으로 한 남미시장 컨테이너 수송 서비스를 본격화했다. 지난달 아시아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등 주요 항구를 연결하는 컨테이너선 신규 항로를 개설한데 이어, 지금은 브라질 상파울루에 브라질법인 설립을 추진 중이다.

주력사업 불황과 그룹사 내부문제 등 ‘닮은 꼴’ 위기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노를 저어온 두 여자 뱃사공. 여전히 춥지만 해빙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올해 해운업 시장에서 그녀들의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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