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플러스=한준기 칼럼리스트] 6년 이상 몸 담았던 첫 직장 ‘현대그룹’을 떠날 때 최대한 업무를 마무리하고 마지막으로는 백화점 현장 영업사원들의 외부 교육과정까지 진행을 이상 없이 해주다 보니 회사에서 법적으로 부여해주었던 정작 나 자신을 위한 휴가는 그리 많이 사용하지를 못했다. 몸은 약간 지쳐있었지만 마음만은 편안했다.

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과 일일이 인사를 하면서 그간의 도움과 배려에 감사를 표했지만 전국에 15개 이상의 사업소를 갖춘 너무 큰 회사였기에 모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사무실을 떠나기 하루 전날, 조용히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사내 이메일 박스를 열고 거의 모든 직원들에게 ‘마지막 인사’의 편지를 보냈다.

획일적인 형식의 고별의 이메일이 아닌 한 청년이 나름대로 청운의 꿈을 품고 들어와 후회 없이 일했던 그 마음을 담고 또 인생 한 켠에 아름답고 소중한 기억을 만들어준 첫 직장에 대한 감사와 아쉬움의 사연을-비록 받아보는 사람은 수백 명이 넘었지만-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듯이 컴퓨터의 키보드를 두드리며 사연을 담아냈고 마지막 순간까지 완전하게 전하지 못한 애틋한 감정은 ‘사랑과 이별’의 메시지를 담은 한편의 시와 함께 쑥스러운 마무리를 했다.

늦은 저녁 시각에 이메일을 보냈음에도 예상 밖의 정성 어린 즉각적인 회신이 필자의 수신함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책상 위의 전화는 연신 울려댔다.

아직까지 필자의 이직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일 이냐고 묻기 시작했고 이렇게 떠나면 안 된다는 사연부터 꼭 다시 놀러 오라는 당부까지 모든 것들이 오히려 필자를 감동시켰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어떤 직원은 필자의 마지막 사연이 너무 소중하고 고마웠기에 그 것을 출력해서 오랫동안 고이 보관을 했다고도 한다.

필자는 같은 시대에 직장 생활을 시작한 동기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직을 많이 한 편에 속한다. 물론 그 이직이 분명한 전략과 테마와 색깔을 갖춘 이직의 연속이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직의 명분과 투명성을 높이 인정해 주고 있다.

많은 이직으로 국내, 다국적 기업의 다양한 직종을 옮겨 다니면서도 인간적으로나 비즈니스적으로나 거의 모든 전 직장의 동료들과 서로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공식적으로도 두 군데의 전 직장으로부터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와서 같이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연락도 받았고 전 직장의 몇몇 임원 분들은 인사분야의 사람이 필요할 때 필자에게 연락을 해서 도움을 청하기도 하고 전 직장의 많은 동료들이 아직도 필자를 잊지 않고 필자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정말 좋았다는 식의 이야기를 이따금씩 해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이며 ‘가슴 찡하고 멋있게’ 떠난 최대의 수혜자는 바로 나 자신이다.

국내 기업을 떠나 외국기업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특히 처음에는 과장 급 정도의 직원으로 일하다가 매니저가 되고 시니어 매니저가 되어 중역의 자리까지 옮겨감에 따라 새로운 고용주들은 전 직장과 시장에서의 필자의 평판을 아주 까다롭게 조사하면서 최종적으로 나를 뽑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했다.

일은 정말 잘 하는지, 동료들과의 관계는 무난한지, 리더십을 갖추고 있는 사람인지 등등을 말이다.

그 때마다 필자와 함께 했던 상사 분들이나 동료들, 후배들은 너무 과분할 정도의 칭찬을 필자의 미래 고용주에게 이야기 해줌으로써 어느덧 필자는 시장에서 ‘믿고 채용해도 전혀 문제없는 사람’이라는 아주 기분 좋은 꼬리표가 따라 다니기 시작했다.

떠날 때는 가슴 찡하고 멋있게

비단 첫 직장 현대를 떠날 때만 그랬던 것이 아니고 매 번 직장을 옮길 때 마다 필자는 설령 개인적으로는 회사에 약간의 서운함이 있더라도 문자 그래도 아주 ‘깔끔하게’ 마무리를 하고 떠나려 최선을 다했다.

혹 가까운 시일 내 이직을 준비하는 분들께 필자가 지켰던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이기 위한 상식적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키려 하지 않는 몇 가지 원칙을 알려주고 싶다.

첫째, 짧게는 한 달, 많을 경우는 두 달 정도 미리 회사를 떠나겠다는 통보를 하라.

번갯불에 콩 구어 먹듯이 말해놓고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나 떠날 테니 알아서 하라는 ‘배째라’ 식의 무식한 방법으로 떠나지 마라.

둘째, 회사가 먼저 이제 필요 없으니 혹은 보기 싫으니 빨리 나가라고 하기 전까지는 철저하게 인수인계 작업을 해주고 떠나라.

인수인계는 형식적으로 구두로 대충 하지 말고 적어도 고등학생이 읽어봐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문서화 해서 남겨두어라.

셋째, 남은 휴가를 잘 활용해서 새로운 출발을 하기 전에 심신이 충분한 휴식을 하는 것은 좋으나 휴가를 위해 인수인계를 엉터리고 하고 떠나는 일을 절대적으로 피하도록 한다.

특히 새로운 회사에서 당신에게 이제 마음도 떠났는데 그 쪽 회사일 대강정리하고 빨리 우리 회사로 들어오라고 할 때 일수록 웃으면서 점잖게 새로운 회사를 설득해서 이전 회사일을 잘 정리해주고 새로운 곳으로 합류토록 한다.

이전 회사 일을 대충 정리하는 당신의 모습이 오히려 멋 훗날 예기치 않은 곳에서 약점으로 잡힐 수도 있다.

넷째, 떠나기 전에는 가급적 사무실에 앉아서 ‘펜’대만 굴리지 말고 영업 등의 현장의 직원들을 최대한 많이 만나 그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떠나라.

할 수만 있다면 여러 명과 점심,저녁 식사를 하면서 석별의 정을 나누도록 해라

다섯째, 짧지만 정성이 담기고 사람의 눈물을 흘리게 할 정도의 감사의 이별 편지를 함께 일했던 직원들 그리고 업무 관계로 만났던 하청업체 사람들에게 보내도록 하라.

마지막 줄에는 반드시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언제라도 연락하라는 말을 빼먹지 않도록 하라.

여섯째, 새로 옮겨가게 될 회사에 대해서는 가급적이면 이야기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자꾸 물어보면 웃으면서 ‘자리 잡게 되면 먼저 연락하겠다’고 말하면 된다.

좁은 세상이기에 알아보려면 알아낼 수는 있겠지만 먼저 어디로 간다고 떠벌리지 않은 것이 좋다. 새 출발을 앞두고 생긴 사소한 오해의 말 한 두 마디가 당신에게 짐이 될 수도 있다.

일곱째, 담담하면서도 자신 있는 표정이면 충분하다.

좋은 회사로 영전 한다고, 급여 좀 더 많이 받는 곳으로 간다고, 보기 싫던 상사나 비전 없었던 회사와 등돌리게 된다고 괜히 ‘희희낙락’ 하는 표정은 삼가하자.

마지막으로, 같은 부서의 직원들과 마무리를 잘해라. 감정적인 대립은 절대 피해라.

이왕 당신이 선택해서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길인데 회사와 동료들을 험담할수록 그 내 뱉은 말의 씨앗은 고스란히 당신에게 다시 돌아올 확률이 크다.

외국사람들은 꽤 냉정한 것 같지만 서로를 평가하는 일에 매우 신중을 기하는 것을 종종 보아왔다.

한국 사람들은 참 정이 많은 사람들 같지만 시도 때도 없이 특히 회사를 떠날 때는 자신이 몸담았던 회사와 함께 했던 동료들을 민망할 정도로 비난하는 것을 자주 목격해 왔다.

이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가 본인 자신이라는 것을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

떠날 때는 무덤덤하게 떠나지 마라. 분명하게 일을 매듭짓고 많은 사람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심어놓아라. 정말 떠날 때는 가슴 찡하고 멋있게 떠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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