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플러스=박소연 기자] 현대건설을 놓고 현대자동차그룹과 지분 경쟁을 벌였던 현대그룹이 이번에는 현대중공업을 필두로 뭉친 범현대가와 또다시 맞붙는다. 핵심은 현대그룹 계열사에 대한 경영권 확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으로선 시댁과의 지분 경쟁이 재점화된 셈이다.

현대상선은 지난 25일 정기주주총회에서 우선주 발행한도를 현행 2000만주에서 8000만주로 늘리는 변경안을 상정했다. 변경안은 필요한 투자재원 마련 외에도 현대중공업을 중심으로 한 범현대가 지분비율을 낮추고 현대그룹 우호지분을 확대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변경안은 현대상선의 지분 23.8%를 보유한 현대중공업 등 범현대가의 반대로 표결 끝에 부결됐다.

현대그룹은 현대상선 주총 이전부터 범현대가를 맹비난하면서 경영권 위협행위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현대차그룹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 7.75%를 현대중공업과 연대해 의결권을 행사한다면 심각한 경영권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 등은 ‘과민 반응’이라며 우선주 발행한도 확대가 주주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어 반대의견을 낸 것이라는 의사를 밝혔지만, 과거 범현대가로부터 경영권 공격을 받았던 현대그룹으로서는 “범현대가의 경영권 장악의도가 드러났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현대그룹은 2000년 3월 정몽구 회장과 고 정몽헌 회장 등 아들들이 경영권을 놓고 충돌하는 소위 ‘왕자의 난’이 발생하면서 뿔뿔이 흩어졌다.

고 정몽헌 회장은 현대그룹의 모태인 현대건설과 현대상선, 현대전자(현 하이닉스) 등 26개 계열사를 거느리게 된다. 정몽구 회장은 자동차 관련 10개 계열사, 정몽준 의원은 현대중공업그룹을 분리해 나가면서 현대그룹은 9개의 소그룹으로 쪼개진다.

이중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경영이 악화돼 부도를 맞은 현대건설은 결국 2001년 채권단의 공동관리에 들어가게 되고, 정몽헌 회장은 2003년 8월 대북 불법송금 특검 진행 중에 안타깝게도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이후 부인 현정은 회장은 남편의 뒤를 이어 현대그룹을 이어받게 된다.

현정은 회장 체제로 새롭게 태어난 현대그룹의 앞날은 순탄치 않았다.

2003년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막내 동생인 정상형 KCC 명예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매입하면서 본격적인 경영권 분쟁에 휘말렸다. ‘숙부의 난’으로 불렸던 KCC와 현대그룹간의 경영권 분쟁은 이듬해 3월 현대엘리베이터 주주총회에서 현 회장이 승리할 때까지 장장 8개월간 지속됐다.

악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6년 정 명예회장의 막내아들인 정몽준 의원이 대주주로 있던 현대중공업과 맞붙은 데 이어, 지난해 현대건설 인수전에서 시숙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맞붙어 속을 끓였다.

재계 일각에서는 범현대가가 현대상선을 중심으로 하는 옛 현대그룹 계열사를 현 회장에게 온전히 넘겨주지 않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특히 경영권과 관련된 범현대가의 단결에는 정 명예회장이 일궈놓은 현대그룹 계열사가 “현씨 가문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바탕이 됐다는 평가다.

표 대결로 또 한 번의 고배를 마신 현대그룹은 이번에는 현대상선 지분율 확대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범현대가의 저지에 맞서겠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표명한 것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주총 이후 현대상선 주식 130만4347주(0.9%)를 전일부터 9월 27일까지 매입할 계획이라고 공시했다. 인수 가격은 주당 3만2200원씩, 총 420억원이며 인수 후 주식은 3466만4515주(22.6%)로 확대된다.

인수가 마무리 되면 현대그룹의 현대상선 지분율은 42.3%에서 43.2%로 늘어난다. 현대중공업과 KCC를 비롯한 범현대가는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 7.9%를 더해 38.7% 이다.

현대건설 인수로 현대상선의 지분을 가져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행보에도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하고,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종합상사와 현대오일뱅크를 인수한데다, 한라그룹도 자동차 부품업체 만도를 인수하는 등 범현대가의 기업들이 과거 계열사를 되찾는데 적극적으로 나서며 재결집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첫 시험대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정 회장은 대리인 위임도 중립을 지킨 채 침묵을 지켰다. 만약 현대건설이 보유한 지분 7.75%이 현대중공업과 연계된다면 정 회장과 현 회장의 3차 분쟁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바야흐로 재계의 시선은 정몽구 회장의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다.

당장은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이 이슈다. 현 회장은 “현대상선 지분이 우리에게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현대차와의 화해는 현대상선 지분을 넘겨받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한편 현대엘리베이터는 대표 이사로 내정됐던 장병우 전 LG오티스엘리베이터 대표이사가 일신상의 사유로 후보를 사퇴한 데 이어, 송진철 대표이사도 임기가 만료됨에 따라 운영 체제는 현정은 회장 단독으로 바뀌었다.

<본 기사는 본지 주간 '소비자플러스'紙 3월 31일자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경제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