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플러스=박소연 기자] “왜 그러지?”
“네, 이번 배는 지금까지 우리가 수주한 것 중 가장 큰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탑재해야 되는 엔진만도 엄청난 무게가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엔진을 들어 배에 올려놓을 충분한 용량의 크레인이 우리에겐 아직 없습니다. 이것을 스웨덴에서 수입해야 되는데 내일 바로 주문을 해도 그것이 이들이 요구하는 인도일까지 조선소에 도착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너무나 타당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잠시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던 정 회장이 간단히 말했다.
“이봐, 해봤어?”
그리고 정 회장은 태연한 얼굴로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희비가 극명하게 갈리는 순간이었다. 선주 측의 얼굴에는 당장 ‘이제 됐다’하는 환희의 표정이 떠오른 반면, 현대 실무자들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버렸다.
(…)
“해 봐. 되는 방법을 찾아 다하면 분명히 돼. 그렇게 되더라구. 내가 해봤더니 그래.”
그 후 배는 계약 날짜에 정확히 맞추어서 인도되었다.
(박정웅, 《정주영 이봐, 해봤어?》중에서)

오는 21일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10주기가 다가오고 있다. “이봐, 해봤어?”의 리더십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故 정주영 명예회장.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만들어낸 과감한 그의 도전 정신은 한국 조선업에도 큰 획을 그었다.

1971년 정주영 명예회장은 ‘불가능’이라는 주위의 만류에도 런던으로 날아가 26만톤짜리 2척을 수주하고 돌아왔다. 조선소 하나 없었지만 ‘도전정신’ 하나로 만들어낸 쾌거였다. 글로벌 1등 한국 조선업의 신화가 그 서막을 연 셈이다.

'미친 사람'이라는 말에도 아랑곳없이 특유의 뚝심과 끈기로 응전한 정 명예회장을 필두로, 한국은 '조선강국'이라는 타이틀로 세계 시장을 제패했다.

한국은 선두자리에서 늑장을 부리다 뒤로 쳐진 일본과 달리 원천기술과 설계인력 확충에의 과감한 투자와 한국인 특유의 근면성과 노사화합으로 한발 한발 나아갔다.

그리하여 마침내 한국은 일본을 제치고 2000년부터 수주량 세계 1위로 우뚝 올라섰다. 대형 벌크선에서부터 고부가 LNG 운반선, 초호화 크루즈선 건조에 이르기까지 국내 조선사들은 쉼 없이 진입 장벽을 높이며 조선강국의 입지를 다져왔다.

그러나 승승장구할 것만 같던 한국 조선업에도 위기가 닥쳤다. 2008년 닥쳐온 글로벌 금융위기는 조선업계에 '수주 가뭄'이라는 시련을 안겼다.

선박 가격이 급락하고 신규 발주가 뚝 끊기면서 조선업은 통제 불가능한 상태로 치달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 정부는 막대한 자금력과 가격 경쟁력을 내세워 한국 조선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위기는 또 다른 기회를 선사했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드릴십, FPSO 등 해양플랜트로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낸 것이다. 드릴십이나 석유시추선 등은 가격이 대당 5억∼7억달러로 FPSO는 기당 가격이 10억달러를 웃도는 고부가가치 사업이다.

뿐만 아니라 풍력, 태양열 등 신재생 에너지 분야에서도 미국에 1호 수출을 기록하면서 수익성 창출의 길을 열어가고 있다. 후발주자인 중국에겐 60년대 일본에서 노후 선박을 들여와 이를 해체해 가며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키워온 불굴의 경쟁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변변한 조선소 하나 없는 맨땅에서 억척스레 일궈낸 저력이 그들에게는 없다.

현재 조선업계는 꽁꽁 얼어붙었던 그간의 한파를 털어내고 굵직굵직한 수주를 따내며 수주 랠리를 이어가고 있다. 거친 풍랑에 맞서 수많은 좌초 위기를 거듭해온 결과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겨울의 끝에 봄이 성큼 다가왔다. 고유의 ‘필살기’로 늘 새로운 신화를 열어왔던 한국 조선사들의 ‘뚝심’을 다시금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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