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플러스=한준기 칼럼리스트]

- 직원은 잘 모르는 그 곳의 이야기

“능력 있어 일 잘하면 안 잘리고, 능력 없어 헤매이다 밥값을 제대로 못하면 잘릴 수 밖에 없다.” 해고의메커니즘을 생각할 때, 한 참 모르던 철없던 시절에는 단순하게 이것 만이 진리인 줄 알았다.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넘기니, 그간에 진리라고 믿고 있었던 것들 가운데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 꽤 있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씩 깨우치게 된다.

더욱이 해고통보도 받아보고, 해고의 위협도 받아보고, 무엇보다 회사를 대변하여 누군가에게 수도 없이 해고를 통보해야만 하는 위치에 자주 서다보니 모르고 있던 사실을 많이 알게되었다.

그럼, 누가 해고를 당하는가? 왜 나는 잘리는데, 저 사람은 잘리지 않을까?

회사의 입장에서는, 사무실안에서는 말을 해주기가 꽤 어려운 비밀아닌 비밀. 읽어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중요한 이 진리를 알고 있으면 아마 폭풍우가 몰아치는 만만치않은 이 커리어 항해에서 위기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여지가 더 커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선, 우리가 확실한 가치(value)를 지니고 있으면 안전하다. 즉, 가치를 지닌 인재, 회사가 필요로 하는 인재, 다른 직원이나 인위적인 소프트웨어 등의 프로그램이 쉽게 우리를 대체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보유하고 있으면 우리는 여간해서는 잘릴 염려가 없다.

둘째, 우리가 가치를 지니고 있지는 않지만. 경영층이나 상사의 눈을 확실하게 매료시킨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를 딱히 대체할 만한 확실한 카드가 회사의 손에 지금 없다면 이 또한 회사의 입장에서는 섣부르게 자르기가 애매하다. 마음속에서는 계속 해고를 생각하고 있다하지만 내 치는 것이 생각만큼은 만만치가 않다. 무조건 교체카드를 들고 나왔다가는 잘못되는 경우에는, 크게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어설프게 ‘기회비용’이 더 많이 들어가는 경우가 발생할 수가 있다.

이런 경우가 적지않다. 그래서 불안 불안 해보이지만 의외로 롱런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이다. 폭풍우를 피하고 위기를 넘길 수 있다면, 그리고 무엇보다도 버틸 수가 있다면, 또 충분히 반전을 시킬 수 있는 것이 인생이다. 그래서 세상은 요지경인 것 같다. (물론 이렇게 확실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음에도 이따금씩 회사에서는 무조건 교체카드를 강행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 상황 속에 우리들이 놓여있게 된다면 시간을 좀 벌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으리라)

셋째, 우리가 가치도 없고 실력도 고만고만한 직원이지만, 회사가 그래도 인간적이기에, 소위 마음씨 좋은 주인을 만났기에, 자본주의의 논리에서는 벌써 정리가 되었어야했지만 아직도 월급을 받고 있는 경우가 있다.

어찌되었든, 잘리지 않고 회사를 오래다닐 수 있다는 것은 다행스럽고 행복한 일이다. 그럼에도 내가 쉽게 ‘잘리지’ 않을 것이라는 메커니즘이 다 파악되었다고 해서, 마냥 복지부동만을 해서는 안된다. 진짜 건드리지 못할 단계까지 본인의 내공을 끌어올려 놓든지, 시간을 벌면서 정말로 나하고 궁합이 맞아 떨어지는 다음 코스 준비를 성실히 해야한다. 당연히, 오늘 그리고 이곳에서 집중을 하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이와 반대로 우리가 해고라는 ‘일시적인’ 비운의 주인공이 되는 경우는 언제인가?

너무 역량이 떨어져서 매번 기대 수준을 현저히 밑도는 성과를 낸다면 나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조직의 생리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생각만큼 이런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어느 정도 실력은 갖추고 있지만, 서로, 즉 회사와 직원이, 너무 궁합이 맞지 않으면 자의반 타의반 그리고 자발적 비자발적으로 작별을 고해야 할 수 있다.

마치 사람 개개인으로 보았을 때는 큰 문제가 없어보이지만 성장해온 배경이 너무 다르고 서로의 성격이 너무 다르기에 결혼후에 이혼을 하는 것에 비유를 해야할까? 사람이란 서로 참고 보듬고 기다려 줄 수도 있겠지만, 비즈니스의 세계는 전쟁터와도 같기 때문에 생각만큼 인간적인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해고 내지는 자발적인 퇴직을 유도하기도 한다.

한 가지 더 최근들어서 빈발하는 케이스는, 조직전체의 전반적인 건강한 혈액순환을 위해서, 경영상의 전략이나 변화 등으로 인해서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구조조정 등으로 나오는 경우도 이제는 상시화 되고 있다는 것이다. 끝으로 위로 올라갈수록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사례인데, 여러가지 복잡한 상황 속에서 꽤씸죄에 걸리는 경우,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켜있는 경우, ‘코드 인사’ 등 등을 이유로 직장을 떠나야만 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이런저런 경우의 수를 통해서 보았듯이 정말 ‘이것은 내 이야기는 아닐 거야’ 라고 생각하면서 외면하고는 싶지만 외면하지 말고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메시지는, 우리는 일을 참 잘하고 있음에도, 열심히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거기다 능력이 있음에도, 발전 가능성이 있음에도 해고를 당할 수도 있는 세상에 살고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바로 나에게도 그런 일은 일어날수도 있다는 것이다.

-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가? 정말 그냥 속편하게 집과 직장을 오가면서 살아가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하고 어떻게 준비를 해야하는가라는 방법론을 언급하기 이전에 마음가짐 자체에, 커리어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여러가지 일들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즉, 세상은 결코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우리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니까 세상을 바라보는 내 마음을 바꾸어보라는 것이다.

괜히 지레 겁을 먹고 커리어의 위기와 쇼크에 대해서 걱정을 하면서 불안한 마음으로 삶을 살아갈 필요까지는 없으리라. 그러나 분명하게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그것이 화려한 시간이건 힘겨운 나락의 시간이건- 흔들리지 않는 우리만의 중심은 잡을 필요가 있다.

몇 해 전에 읽었던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 ‘이영표’선수가 쓴 자서전의 제목이 갑자기 떠오른다. “성공이 성공이 아니고 실패가 실패가 아니다.” 비록, 그 책이 우리의 커리어나 해고에 관해서 쓴 내용은 결코 아니지만, 이 책의 제목만큼은 한 번쯤은 깊이 음미를 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능력있다고 결코 자만하지 마라. 조금 잘나간다고 어깨에 힘을 줄 필요도 없다. 언젠가는 한 번쯤은 꺽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커리어이고 인생이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속칭 잘 나가는 샐러리맨들을 숱하게 보아왔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최고경영자도 많이 보았다. 그런데 정말 아름다운 모습으로 정상에서 물러나는 경우를 본다는 것은 극히 힘들다는 것 역시 발견하게 되었다.

우리 자신이 직장내에서 최고의 엘리트코스를 걷고 있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그 것이 다는 아니다. 그로인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걸음걸이가 달라진다면, 그것은 참 웃기지도 않은 일일 것이다. 튼튼하고 굵은 동아줄 잡고 있다고 착각하지 마라, 하루 아침에 그 것이 썩은 동아줄도 될 수 있는 것이 직장의 세계이며, 커리어의 이치다.

반대로 지금 좀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괴롭더라도 좌절하거나 포기까지 할 필요는 없다. 시쳇말로 우리의 커리어가 꼬여도 너무 꼬이는 것 같은 상황속에 있을 수도 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고 상황을 반전시켜야 할지도 막막하고, 정말 길고 긴 어두운 터널 속을 헤매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을 수가 있다. 왜 극심한 슬럼프 속에 있는지에 대해서 원인파악도 제대로 안되고, 원인을 분석해서 풀어보려고 해도 모든 것들이 내게 등을 돌리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일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보면 슬럼프를 겪고 있다는 것은 행복한 것이다. 그것은 내가 실력이 상당히 괜찮은 프로페셔널이라는, 더 활약을 하고 있어야 하는데 어떤 이유로 인해서 지금 일시적으로 실력발휘를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그냥 우선 담담히 받아들이면 된다. 특히 해고 등의 커리어의 쇼크, 그리고 이와 맞물려 있는여러가지 복잡한 일들은 때로는 초기에 우리들이 거의 통제를 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분분이기 때문이다.

축구시합을 하는데 잠시 집중력을 잃어서 상대팀의 공격에 무너져서 실점을 당했다고 해보자. 어떻게 해야하는가? 무턱대고 흥분하고 다시 시합을 원점으로 돌리고 이겨야겠다는 생각만으로 불물가리지 않고 우리 팀이 가지고 있는 기량과 전술은 생각하지 않고 골을 넣어야겠다는 일념에 공격만 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또 실점을 당해서 완전히 주저앉을 수도 있는 더 큰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커리어의 게임도 마찬가지이다. 일단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었던 그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차분하게 하나 둘씩 정상적으로 게임을 풀어나가면 된다. “아, 그 때 그렇게 해볼 걸,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 라는 이미 지나가버린 벌어진 일들을 자꾸 후회하고 있는 것은 가장 소모적이고 의미없는 짓이 될 것이다.

- 어떻게 받아 들일 것인가?

어떻게 잘릴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또 다른 출발을 잘 준비할 것인가에 집중 할 수 있어야 한다. 해고통보도 많이 해보았고, 주변에서 해고를 당하는 사람들도 많이 목격을 해보았지만, 정말 제대로 잘리는 사람,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내려놓아야 할 것은 내려놓고, 새롭게 승부수를 띄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알고, 중심을 잘 잡고 헤쳐나가는 사람을 목격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때로는 중이 제 머리 깍지 못한다고, 나 역시 해고와 해고의 위협속에서 너무 흔들리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서 전전긍긍 했던 나날이 적지 않았다.

왜 누구는 멀쩡한데 나는 해고의 위협에 있을 수 밖에 없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것들로 인해서 자책을 하면서 주저앉을 필요는 절대없다. 정상적으로 하나 둘씩 게임을 풀어가다보면 우리는 또 어떻게 해서든지 나에게 맞는 커리어의 길을 찾아 갈 수 있는 사람들이고 또 그런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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