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플러스=한준기 칼럼리스트]

 떠나야 할 때 vs. 참아야 할 때 

-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면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이미 추억의 이야깃거리가 된 작금의 세상에서는 ‘이직’과 ‘전직’이라는 단어는 이제 더 이상 낯선 말도 아니요, 금기 시 되는 주제도 아니다.

왜 이직을 하십니까, 라는 질문에 대한 샐러리맨들의 대답은 각양각색이다.

일반적으로는, 당초 약속했던(기대했던) 직무내용이나 근무조건과 너무 상이한 현재의 상황 때문에, 꼭 한 번 도전해보고 싶었던 꿈의 직무가 있었는데 그 일을 할 수 있는 곳으로부터 좋은 제안을 받아서, 너무 과중한 업무로 인해서 악화된 건강관리를 위해서 어쩔 수가 없이, 혹은 자녀교육, 배우자 전출 등의 불가피한 가정사 문제로 인해서 그리고 본인은 떠나고 싶지 않지만 회사의 경영악화나 구조조정 등의 이유로 불가피하게 떠난다는 이유는 그래도 나름 표면적으로는 고개를 끄덕일만한 것으로 여겨진다.

반면 연봉이 낮아서, 야근이 많아서, 존경할만한 상사가 없어서, 상사와의 마찰 때문에, 더 이상 지금의 회사에서는 배울 것이 없어서, 자기계발의 기회가 없어서, 등의 이유는 당사자들의 입장에서는 그럴듯한 이직 사유가 될 수는 있겠지만 거래를 위해 시장으로 나가는 순간 자칫 매의 눈을 가진 까다로운 인사전문가나 최고경영진의 질문 앞에서는 한 두 번 공격을 받을 수도 있는 내용일지 모른다.

특히 우리들처럼 직장생활 할만 큼 했다고 하는 중년의 경력사원들에게 있어서는 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샐러리맨들을 이를 ‘퉁’쳐서 더 이상의 비전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두리뭉실하게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마치 가정법원에 나온 이혼을 신청한 부부들이 대체적으로 ‘성격차이’라고 하면 통하는 것과 꽤 흡사하다.

그러나 결혼과 이혼은 굳이 남과 디테일을 다 공유할 필요까지는 없는 문자 그대로 개인의 사생활이고 어디서 그 내용을 일일이 밝힐 필요도 의무도 없다. 그렇지만 이직 사유는 말할 때는 이야기의 맥락이 완전히 다를 수가 있다.

내 스스로가 생각하는 명문과 실리가 제 3자에게도 타당성이 있어 보이고, 이를 가지고 나를 또 ‘구매’해 줄 수 있는 새로운 잠재적인 고용주를 설득시킬 수 있다면 괜찮을 것이다. 아울러, “나의 장기적인 커리어 목표를 향해 가는 그 여정의 좋은 징검다리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스스로의 질문에 자신 있는 “Yes”의 대답이 나올 수 있다면 참 좋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정말 머물러야 할 때와 이제는 물러나 주어야 할 순간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가장 지혜로운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물러날 때 회사나 주변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박수를 쳐줄 수 있는 대상이 될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 떠나야 할 때와 참아야 할 때를 분별할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어떤 상황과 사유로 그리고 어떻게 준비를 해서 회사와 이별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몇 가지 경우로 정리를 해보자.

1. 새로운 기회가 자신의 중장기 커리어 플랜과 부합이 되어야 한다. 이로 인해서 내 커리어의 테마와 스토리가 한층 더 탄탄하게 다져질 수 있다면 괜찮은 기회가 될 것이다.

2. 그런 새로운 도전을 꾸준히 모색하고 준비했고 여러 경로를 통해서 새로운 둥지가 문화적으로도 나와 코드가 잘 맞을 것이라는 확신이 섰을 때이다.

3. 왜 그 회사에서 그 포지션이 오픈 되었으며 많은 후보자 가운데 최종적으로 나를 낙점했는지를 분석해보아라. 나의 가치나 잠재력이 새로운 직장이 직면한 문제나 위기에 필요한 경우라면 한번 도전해 볼 만하다.

4. 현재 여기에서 하던 일과 전혀 다름 없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수직이동 혹은 이전 경험을 토대로 새롭게 익히고 도전할 업무량이 30% 이상은 될 경우라면 괜찮다.

5. 나름대로 이직 시 자신이 중시하는 의사결정 요소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보자. 현재의 새로운 기회가 자신의 이직의 의사결정 체크리스트의 중요한 요소들- 예를 들자면, 업무자율권과 권한, 새로운 프로젝트, 자기성취도, 급여부분, 직업의 상대적인 안정성, 일과 삶의 균형 등- 대부분이 체크되고 있는 경우이다.

6. 현재 회사에서의 성과가 피크를 치고 있을 때- 박수칠 때 떠나라-라면 타이밍상으로 오히려 바람직하다.
7. 안정된 직장에 몸 담고 있는 경우에 새로운 직업을 구하는 것이 좋다. 즉 한 템포 빠르게 움직이는 작전이 의외로 주효할 수 있다.

뚜렷한 직업이 없는 상태에서 구직활동을 하게 되면, 대부분의 경우 심리적인 압박에 밀려서 최고의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8. 명분과 실리가 있고, 이 번 이직으로 상품으로서 나의 부가가치가 한 단계 상승할 수 있다는 믿음이 선다면 베팅을 해보아라.

즉, 이번 이직으로 인해서 프로페셔널로서의 시장에서의 당신의 부가가치가 한 단계 상승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선다면 움직여봐도 좋다.

9. 너무 당연한 사항이지만, 새로운 회사의 최근 사업실적, 재무제표, 주가 등을 체크해보고 종합적으로 회사의 안정성이 괜찮은 경우라면 좋을 것이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모든 조건에 다 부합되는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결국 전하고자 하는 포인트는 적어도 이 기본적인 원칙을 하나 하나 짚어본 후에 최종적으로 이직을 결심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럼, 반대로 이직이나 전직을 신중하게 보류해야 하는 경우는 어떤 것이 있을 수 있을까?

1. 매력적으로 보이는 급여 때문에 감정적으로 흔들리고 있다면 ‘붕’떠있는 상황이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2. 사고치고 최악의 성과를 내고 도피하듯이 가는 상황이라면 바람직한 이직의 타이밍은 아니다. 만약, 회사에서 나가라고 하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진짜 프로답게 먼저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해놓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3. 상사, 동료 등과의 갈등으로 욱하는 마음에‘두고 봐라’ 하는 심정으로 나가는 경우라면 이런 이직은 정말 바람직하지 않다.

프로들의 세계에서 중요한 시합을 하면서 냉철함을 잃고 감정적으로 싸워서 게임을 지배하는 선수를 아직은 본 적이 없다.

4. 내면의 소리에 움직이지 않고, 주변의 이벤트와 같은 상황에 이끌리어 떠남을 준비하고 있다면 이는 호재가 아닐 수가 있다.

이직이란 단순한 호기심이나 인간적인 정에 이끌려서 하는 이벤트가 절대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5. 현재의 일과 거의 차이가 없어 새로운 긴장이나 도전이 전혀 없는 경우이다. 일도 비슷하고 연봉도 비슷하고 회사의 규모가 시장에서의 가치도 비슷한데 굳이 억지로 옮길 필요가 있을까?

괜히 따분하고 권태기를 느껴서 잠시 바람 피우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후회로 상황이 종료될 수 있지 않을까?

6. 나 말고도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주 많은 경우라면 좀 더 신중히 생각해 보자- 떠난다면 자신의 희소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곳으로 움직이는 것이 좋다.

7. 믿을 수 있는 사람 등을 통해 새로운 회사를 제대로 검증해 보지 않고 무조건 떠나는 경우는 위험하다.

요즘은 전화 한 두통이면 다 알아볼 수 있다. 회사의 비즈니스 상황, 기업의 문화, 함께 일할 사람들의 면면에 대해서 한 번 점검을 해본 후에 의사결정을 해도 늦지 않다.

8. 끝으로 종합적으로 코멘트를 하자면, 함부로 안팎 여기저기에다 마음에 들지 않아 퇴사해야겠다는 소리 하고 다니지 마라.

즉, 함부로 칼을 뽑아 들지 마라. 절대로. 칼은 딱 한번 만 뽑으라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이직의 세계에서는. 나는 주변에서 조금만 힘들고 자기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갈 때도 없으면서 “아무래도 내 커리어 비전을 생각해서 회사 밖에서의 다른 기회를 심각하게 고민해봐야겠습니다.” 라는 말을 너무 쉽게 내뱉고 다니는 직원들을 간간히 본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루져’다. 시장에서 주목조차 하지 않고, 조직에서도 그리 신경을 쓰지도 않는다.

그대는 제발 이런 함부로 칼 뽑는 사람이 되지 마라. 이런 ‘양치기 소년’케이스로 이직과 전직은 하지 말자.

위에서 언급한 상황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독자들이 균형 있고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동시에 기억해야 할 것은 ‘완벽한 찬스’를 사실 만나기는 어렵고 너무 완벽한 찬스만을 기다리다가 죽을 때까지 단 한번의 새로운 도전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도태되어 버리는 상황에 몰리지 않았으면 한다.

더 크고 의미 있는 도전을 위해서 어느 정도의 위험감수와 새로운 곳에서의 적응을 위한 가슴 졸이는 노력 역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시장의 논리이다.

이제 최종 판단은 당신의 몫이다. 어차피 새로운 무대에서 새로운 도전을 감당해야 할 사람도 당신이고, 당신의 커리어에 책임을 져야만 할 사람도 바로 당신이기 때문이다.

나의 성장에도 도움이 되고 그리고 후배들에게도 길을 열어줄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이별의 주인공이 되기를 진심으로 염원한다.

저작권자 © 경제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