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정국이 넉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여야 대선후보군에서는 연일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에 대한 압박이 높아지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재계의 근심도 그만큼 깊어지고 있다.

새누리당이 박근혜 대선후보를 선출하면서 경제 민주화 논의를 강공에서 완화로 선회할 듯 보이지만 경제적 약자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겠다는 기본 방침에는 큰 변화가 없다.

민주당, 통합진보당 등 야권은 여전히 대기업집단은 문제집단이라는 방향성을 유지하면서 재계 전반에 맹공을 퍼붙는 양상이다.

10대 그룹의 한 임원은 사견을 전제로 "대기업집단이 국가경제 악의 축이라는 식의 공격성향 마저 느껴진다"면서 "그동안의 시대상황과 경영현실은 고려하지 않고 헌법의 경제 민주화에 치중하는 것은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사실 재계의 입장에서 경제 민주화 논의 자체는 반대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경제 민주화가 과연 그만큼의 합당한 경제와 경영의 논리를 담고 있는지, 사회적 합의도 없이 일방적인 재벌 때리기로 흐르는 것은 아닌지 등 고민없는 '표심'만을 위한 공세의 문제성은 심각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치권에서 논의된 경제 민주화 법안들은 대부분 재벌로 비유되는 대기업집단과 그 오너를 직접 겨냥하고 있다. 산업경제의 중심 축인 10대 그룹사 모두가 이런 화두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현재 여·야의 경제 민주화 공약에서 재계를 겨냥하고 있는 공통된 현안은 크게 금융지주회사법 개정과 공정거래법 개정이다. 이런 맥락에서 순환출자 금지, 출자총액제한제 도입, 금산분리, 총수 횡령 등 처벌, 징벌적 손해배상제, 재벌 독점, 골목상권, 세제 등의 문제는 재계의 목을 틀어쥔 대표적인 화두다.

재계는 이런 현안 대부분에 대해 원칙적인 반대 의사를 강하게 피력하고 있다. 특히 주요 그룹사들은 개별적으로 입장 표명은 자제하지만 순환출자 금지나 금산분리, 총수 횡령 등 처벌 등의 화두에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들 화두에 대해서 여당과 야권이 일부분 차이를 보이고는 있지만 규제와 제한이라는 기본 방향에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만 박근혜 후보가 그동안 순환출자 부분에서 다소 완화된 방향성을, 금산분리 문제에는 아직 이렇다할 그림을 그리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여당의 기존 논의가 어떤 변화로 이어질지 재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순환출자 금지·금산분리 '이럴수가'

주요 그룹들에게 순환출자 금지는 반기업, 반재벌 정서 확산의 측면과 함께 막대한 자금 투입과 지배구조의 해체라는 우려를 낳는다. 여야 모두가 '재계의 우려가 엄살'이라는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주요 그룹들에게 순환출자 문제는 선뜻 답을 내놓기 어려운 문제는 분명해 보인다.

단적으로 순환출자 금지는 주요 그룹들에게 경영권 방어와 총수 일가의 지배체제 붕괴 가능성을 높이는 부분이다.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들어가야할 막대한 비용도 걱정거리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은 자산 5조원 이상 63개 상호출자제한 그룹에 대해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기존 순환출자 고리도 3년 내 해소하거나 못할 경우 의결권을 제한하는 방향을 설정했다. 새누리당도 이달 초 발의한 법안에서 자산 5조원 이상 기업집단의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기존 순환출자의 부풀려진 의결권도 제한하도록 했다.

이 경우 당장 제계 자산순위 1,2위인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은 폭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두 그룹사 모두 그동안 다양한 지배구조 변화를 모색해왔지만 여전히 순환출자 고리를 벗어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등 오너 일가를 중심으로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큰 줄기의 순환출자 지배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에버랜드 지분 3.4%를, 이재용 사장은 25.1%를 보유하고 있다.

그 안에서 삼성전자-삼성SDI-삼성물산-삼성전자,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전자-삼성전기-삼성에버랜드 등 각 계열사를 묶는 고리가 얽혀있다. 자연스럽게 이들 모두 총수가 경영권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현대차그룹도 순환출자 해소는 큰 고민이다. 삼성은 어느 고리가 무너지더라도 지배체제 자체의 붕괴 가능성은 낮은 반면 현대차그룹의 경우는 현대모비스와의 고리가 끊길 경우 정몽구 회장 등 오너 일가의 그룹 전체 지배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큰틀에서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고리를 형성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가 20.78%의 현대차 지분을, 현대차가 33.99%의 기아차 지분을, 기아차가 16.88%의 현대모비스 지분을 보유하며 순환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이 현대모비스 지분 6.96%,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기아차 1.73%와 현대글로비스 31.88% 등을 보유 중이고, 여기에 현대제철(정몽구 회장 12.52%), 현대엠코(정의선 부회장 25.06%) 등 주요 계열사들이 현대모비스의 순환고리에 연결돼 있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 신사업이나 신규투자 등이 진행되면 자연스럽게 순환고리는 형성된다"면서 "수직계열화 차원에서도 이런 부분은 단순하게 순환출자 금지로 규제하는 것이 이치에도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10대 그룹 대부분의 공통된 고민이다. 롯데그룹은 계열사간 지분관계가 얽힌 순환출자 고리가 여러개 존재하고, 한진그룹도 대한항공-정석기업-한진-대한항공의 순환고리를 통해 전체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다. 현대중공업그룹도 현대중공업-삼호중공업-미포조선-현대중공업으로 연결된다.

SK나 LG, GS, 두산 등은 이미 지주회사로 전환했거나 전환과정에서 사실상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한 그룹들은 상대적으로 이 화두에서 느긋한 상황이지만 이마저도 순환출자 금지의 연장선에서 현행 자회사 지분 40% 미만 보유 비율을 조금만 높게 규제하면 그만큼의 자회사를 매각해야하는 상황에 놓을 수도 있다.

제2금융권 계열사를 제한하는 논의가 불붙고 있는 금산분리 확대 문제도 10대 그룹에게는 큰 부담이다.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등 주요 대기업집단 대부분이 제2금융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금산분리는 대기업이 계열 금융회사를 사금고처럼 쓰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됐지만 제1금융에 국한된다. 하지만 확대 방안은 제2금융권이 제조업 지분을 보유할 수 없도록 하고, 제조업의 제2금융권 지분 보유도 제한하는 방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대기업이 제2금융 계열사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당하거나 하는 식이다.

이과 관련해 삼성그룹은 11개의 제2금융 계열사를, 롯데그룹은 10개, 한화그룹은 9개 등 주요 그룹 대부분이 제2금융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어 논의가 현실화되면 경영권은 물론 그룹 자체의 해체까지도 걱정해야되는 상황이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기업이 신규사업 진출 일환으로 제2금융 계열사를 하는건데 이걸 막겠다는 것은 사업하지 말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면서 "외국에서도 이런 식의 금산분리는 거의 없다"고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재벌 총수 처벌 강화는 이미 진행형

최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법정 구속으로 재계는 충격과 당혹감에 휩싸여 있다. 그동안 대기업집단 총수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하되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것이 관행처럼 인식돼 왔던 터라 그 충격을 더욱 크다.

사실, 이건희 삼성 회장, 정몽구 현대차 회장 등 그동안 주요 그룹 총수들은 비자금, 횡령, 배임 등 비슷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전력이 있다. 하지만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경영에서 일정기간 자숙의 기간을 가진는 형태였다.

총수 횡령 등 처벌은 여야 모두 강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부분이다. 야권은 보다 강력한 강화책을, 여당은 사면권 제한 등의 강화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김승연 회장의 이번 법정 구속을 이끈 것 아니냐는 의구심은 재계에 팽배한 상태다.

때문에 김승연 회장의 이번 구속 사태는 재판을 앞두고 있는 주요 그룹 총수들에게는 더더욱 남의 일 같지 않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나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모두 김승연 회장과 비슷하게 횡령과 배임 혐의 등으로 재판을 진행 중이다. 최태원 회장은 636억원의 배임 혐
의로, 박찬구 회장은 274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각각 기소됐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김승연 회장의 법정 구속 사태는 재판부의 엄격한 법적용의 의지겠지만 그래도 최근의 재벌개혁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가 아니겠냐"고 견해는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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