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플러스=이지하 기자] 얼마 전 대학 후배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한 외국계 보험회사에서 보험설계사로 근무하게 됐다는 소식이었다.

오랜만에 듣는 후배 목소리에 작은 미소가 번지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섰다. 이미 수개의 보험을 들어 논 탓에 후배의 요구를 어떻게 뿌리칠지도 근심거리였지만, 무엇보다 보험조직의 생리. 소위 '보험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험설계사 하면 가장 친근하게 떠오르는 것이 바로 '보험 아줌마'일 테지만,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고학력과 전문성을 갖춘 젊은 보험설계사들이 눈에 띄게 급증했다. 이제는 깔끔한 정장 차림에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전문적인 재무설계 서비스를 제공하는 설계사들을 보는 게 낮설지 않을 정도다.

일각에서는 젊은 설계사들의 출현을 청년실업과 연관 짓기도 한다. 전체 설계사 중 대졸자와 남성의 비율이 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생보사 남성설계사의 경우 25~29세가 지난 1999년 3398명이었던 데 반해 2009년에는 6917명으로 증가했고, 30~34세 역시 같은 기간동안 3835명에서 1만48명으로 3배 가까이 뛰었다.

이처럼 젊고 똑똑한 보험설계사들이 보험시장에 쏟아져 나오지만, 이들의 현실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은 게 사실이다. 보험사들이 젊은 설계사들을 통해 '인맥'이 아닌 '전문성'과 '대졸 금융인' 이미지를 앞세워 고급영업 방식을 표방하지만, 실상은 여전히 '지인영업'에 기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년간의 사회경험을 통해 쌓은 수많은 지인들로 무장하고서 뛰어든 설계사들도 몇년을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는 곳이 보험업계다. 그 만큼 살아남기 힘든 동네다. 사회경험이 부족한 젊은 설계사들이 자칫 '억대 연봉'이라는 장미빛 환상에 사로잡혀 자기 수렁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스러울 따름이다.

"새로운 설계사를 뽑아 철저히 교육시켜 세상에 내보내도 보험영업에 적응하지 못하고 1년안에 나가 떨어지는 설계사가 10에 8은 될 거다". 한 보험사 지점장의 말이다. 

그는 신입설계사가 입사 후 몇달만에 퇴사해도 회사는 전혀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라고 귀뜸한다. 기본급 지급이 없을 뿐더러 정착수당도 일정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나중에 도로 뱉어내야 한다는 것. 설령 몇달간 영업실적이 저조해도 가족이나 친구 등 몇건의 계약은 건저 온다는 계산이다. 

"보험회사는 끊임없이 사람을 쓰고 버리면서 덩치를 키우는 조직"이라는 자조섞인 그의 한마디는 많은 것을 대변하는 듯 하다.

오늘도 국내외 20여개에 달하는 보험사들은 경쟁사보다 '좀 더 좋은 조건'을 내걸며 젊은 설계사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 이면에는 별다른 경력이 되지 못하는 보험영업에 자신의 청춘을 허비한 낙오자들이 금전적 손실은 물론 재취업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가 숨겨져 있는 데도 말이다.  

보험업계의 잦은 퇴사와 이직이 결국 승환계약이나 불완전 판매 등 보험 소비자의 직접적인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젊은 '철새설계사'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후배를 통해 가입한 보험이 '고아계약' 신세로 전락해 "담당자가 바뀌었다"는 전화를 받지 않기를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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